사회
각자의 세대, 공존을 외치다
모든 세대는 자기 세대가 앞선 세대보다 더 많이 알고 다음 세대보다 더 현명하다고 믿는다. - 조지 오웰
요즘 애들? 라떼는 말이야!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 관용구처럼 쓰이는 이 말의 시초는 무려 3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8세기경에 쓰인 그리스 고전 <일리야드>에는 ‘요즘 애들은 나약하다’라는 문장이, 기원전 233년에 쓰인 중국의 <한비자>에는 ‘스승이 가르쳐도 변할 줄 모른다’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세월이 갈수록 선비의 버릇이 예전만 못하다’라는 말이 남아 있다. 이들을 보고 있자면, 세대 갈등이 비단 요즘 문제만은 아닌 듯하다.
하지만 오늘날의 갈등 양상은 웃어넘길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꼰대’, ‘틀딱’, ‘MZ’ 등의 단어가 밈으로 소비되고, 다른 세대를 조롱하는 SNS 콘텐츠가 넘쳐난다. 댓글 창마다 세대 간 격한 언쟁이 벌어지고, 선거철이 되면 언론은 신이라도 난 듯 앞다퉈 대립 구도를 강조한다. 툭 던진 말 한마디는 혐오의 기폭제가 되어, 끝내 귀를 닫게 만든다.
기성세대가 살아온 사회와 젊은 세대가 살아갈 사회는 가치관, 경제적 조건, 정치 성향, 대화 방식까지 모든 면에서 다르다. 이를 고려하지도 않고 누군가는 “이해심이 부족하다”라는 반면, 또 누군가는 “들은 척도 안 한다”라며 서로 손가락질하기에 바쁘다. 끝없이 이어지는 세대 갈등, 서로를 향한 꼬인 속내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세대별 시대상부터 차근차근 짚어봤다.
가족끼리 왜 이래
갈등은 서로 간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시작되기 마련이다. 여러 세대가 함께 살아가는 한 집안의 이야기를 통해, 그 차이를 조금씩 알아가 보자.
“밥 먹자” 말이 끝나자마자 수저 부딪히는 소리가 일제히 들려온다. 요즘은 여러 세대가 한 지붕 아래 함께 사는 것도, 밥 한 끼 나누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김 씨네는 주 1회, 온 가족이 모여 식사 시간을 갖기로 했다. 가장인 김세대가 고집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주에 한 번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더 자주 모이자고 제안해 봤지만 늦둥이 둘째는 대놓고 반색을 표했고, 첫째 아들 내외도 시간 맞추기 어렵다며 그를 설득했다. 몇 년 전 은퇴한 김세대는 사실상 가장의 권위를 잃었기에, 예전처럼 의견을 밀어붙이기 어려웠다. 그가 젊었을 적엔 부모님 말씀은 곧 명령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자식 세대는 그 시절과 너무나도 다르다. 79년생 김정의는 김세대의 첫째 아들이다. 며칠 전 아버지는 난데없이 가족회의를 소집해, 적어도 주말에는 다 같이 식사하자고 말씀하셨다. ‘다 같이’, 얼마나 따뜻한 말인가! 함께하는 자리의 부재를 느끼기 시작한 그는 더없이 반가웠다. 하지만 아직 혼자가 좋은 제 동생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둘의 대립으로 싸늘해진 분위기를 수습하느라 진땀을 빼던 김정의는, 문득 중간에서 눈치나 보는 자신이 처량했다. 그 와중에 하나뿐인 딸은 듣는 둥 마는 둥 휴대폰만 만지고 있었다. 나 어릴 때도 저랬던가? 김정의는 정의할 수 없다(X)는 본인의 세대보다, 오히려 자식 세대가 더 정의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김정의보다 열 살 아래인 김천은 가족과의 식사 자리가 부담스럽다.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사고와 말투는 여전히 불편하고, 밥상머리에서 “언제 결혼하냐”라는 잔소리를 들을 땐 짜증부터 앞선다.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거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아버지는 혀를 차고, 형은 옆에서 “너도 나이 들어봐라”라며 거들기나 한다. 일에 치여 사는 김천은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하다. ‘다 같이’하는 자리는 달에 한 번도 충분한걸. 그는 가족 관계에도 ‘워라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복잡한 세상, 가족마저 저를 편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김제니는 숨이 막혔다. 김정의의 딸 김제니는 04년생 Z세대다. 식사 시간을 맞추는 건 어렵지 않지만, 싸한 분위기는 썩 유쾌하지 않다. 할아버지의 고집도 고집이지만, 매번 맞서는 삼촌도 이해할 수 없다. 대충 몇 번 빠지면 되지 않나? ‘ㄹㅇ개에바 할아버지랑 삼촌 또 싸움’ 제니의 카톡에 친구는 캥거루가 싸우는 짤을 보내왔다. 아, 킹 받아. “김제니, 밥 먹으면서 폰 그만해라” 아뿔싸, 김정의의 한마디에 제니에게 시선이 몰린다. 네네, 죄송함다. 제니는 설렁설렁 대답하곤 혼자 생각했다. 빨리 먹고 방에 가서 넷플이나 봐야지. |
김세대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로, 혼란과 가난의 시대에 태어나 고도의 경제성장기를 이끈 주역이다. 개인보다는 공동체와 가족 중심의 가치관을 지녔다. 전통적인 가부장제에 익숙하며, 부모나 형제를 부양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현재는 은퇴 후 삶의 전환점을 맞아 새로운 사회적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김정의는 X세대(1964~1980년생)다. 아날로그 기기를 사용하며 성장한 동시에, 인터넷, 디지털 시대로의 전환을 직접 경험했다. 또한 서태지와 아이들, H.O.T 등 새로운 대중문화에 열광한 세대다. 기성세대에게 직접적으로 저항한 첫 세대로, 당시 X세대의 X는 정의할 수 없음을 뜻했다. 그러나 IMF와 경제 위기를 겪으며 청년 시절을 보냈고, 중장년이 된 현재에는 새로운 기성세대로 자리 잡았다.
김천은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생)다. 스펙 경쟁과 고용 불안을 겪으며, 안정보다는 생존에 가까운 경쟁 사회에서 살아왔다. 이들 세대에 들어서면서 개인주의는 한층 더 강해졌다. 자아실현의 욕구가 뚜렷하고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중시한다. 이들에게 결혼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 됐다. 이러한 가치관 변화는 비혼주의의 확산으로까지 이어졌다.
김제니는 Z세대(1997~2010년생)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다. 스마트폰, 유튜브, 틱톡과 함께 성장해, 짧고 강한 메시지와 이미지 중심 소통에 익숙하다. 유행이나 관심사가 빠르게 바뀌고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이들 특유의 직설적이고 효율 중심적인 태도는 종종 ‘예의 없다’거나 ‘이기적’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휴학을 한다고?” 천둥 같은 목소리가 온 집안에 울려 퍼졌다. 재수 끝에 한양대학교에 입학한 손녀 김제니는 이제 막 2학년 1학기를 마쳤다. 1년 늦게 대학에 들어갔으면 빨리 졸업하고 취직할 생각을 해야지, 휴학이라니? 어불성설이다. “요즘 휴학 안 하는 애들 없어요. 학교 다니면서 스펙을 어떻게 쌓아요?” 제니는 이미 해외 연수도 계획했고, 부모님께 허락까지 맡았다. 할아버지가 왜 저렇게 화내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심지어 외국에 나가?” 김세대에겐 전부 놀기 위한 핑계로만 들렸다. 사치도 정도껏이지. 그가 학생일 땐 대학 문턱 밟기도 힘들었는데 말이다. 격양된 목소리가 오가자 김정의가 중재에 나섰다. “아버지, 제니 말이 맞아요” 김정의네 회사의 신입사원들만 봐도 각종 대외 활동에 해외 연수는 필수인 데다, 화려한 인턴 경력도 기본이었다. “네가 이러니 애가 제멋대로지. 얘 연예인 따라다니는 데에 돈 보태줄 때부터 알아봤다. 지 아빠랑 똑같아 가지곤” 그 말에 김정의는 언짢아졌다. 학창시절, 자신이 동경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을 딴따라 취급하셨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그 정도는 다 해줘야죠. 제니 시집가서 뭐든 못 해줬다는 얘기 안 듣게 하려면” 젊었을 적 IMF를 겪은 김정의는, 그때보다 더 많은 것을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요즘 청년들이 참 부러웠다. 그러니 제 딸도 부족함 없이 남들 하는 것 다 해보길 바랐다. ‘예? 시집이요?’ 부글부글 끓던 제니의 속이 순간 차게 식었다. 이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래. 여기서 결혼이라는 단어가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 “어린애 앞에서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이번에는 김천이 나섰다. 갓 스무 살을 넘긴 제니에게 결혼 얘기라니, 얼토당토않다. 그리고 김천의 세대부터도 해외 출신이나 유학파는 수두룩했다. 제니가 취업을 준비할 즈음이면 취업 경쟁은 더 치열해질 거다. “20대 때 뭐든 다 해봐야죠. 지나고 나면 하고 싶어도 못 해요” “우리는 한데 모였다 하면 싸움이야. 가족끼리 왜 이래?” 누군가의 말에 처음으로 모두가 공감했다. 같이 사는 가족인데, 이렇게나 서로 다르다니. |
한 지붕, 한 사회, 여러 세대
가장 익숙하고도 가장 가까운 공동체, 가족. 혈연을 바탕으로 한 이 단위는 오랜 세월 동안 삶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 개념이 변화하고 있다. 같이 살아야 한다는 인식이 흐려지며 2세대 이상이 함께 사는 가구가 줄었고, 1인 가구는 꾸준히 증가했다. 전통적인 가족 모델이 붕괴하며 세대 간 주거 환경 차이도 더 뚜렷해졌다.
터무니없이 비싼 집값은 청년들을 지옥고(지하, 옥탑방, 고시원)로 이끌었고, 이들에게 ‘내 집 마련’은 하늘에 별따기가 됐다. 반면 부모 세대는 집값이 올라야 노후가 안정된다는 생각에 부동산 가치와 임대소득에 집착한다. 이렇듯 주거에 대한 인식도, 처한 현실도 세대마다 다르다 보니, 부동산 관련 정책이나 규제에 대한 반응 역시 극명하게 갈린다.
자식들이 출가하면 부모의 외로움은 한층 깊어진다. 자연스레 ‘효’에 집착하며, 자식이 더 자주 얼굴을 비췄으면 한다. 반면 청년 세대는 ‘내 인생 살기 바쁜데, 부모님까지 매번 신경 쓰긴 버겁다’는 입장이다. 자주 찾아뵙기보다 명절이나 생신을 확실히 챙기는 방식으로 효를 실천하고 싶어 한다. 한쪽은 ‘책임’이라 여기고, 다른 쪽은 ‘부담’이라 느끼는 이 간극은 결국 일상에서 마찰을 빚는다.
결혼에 대해서도 견해차가 뚜렷하다. 부모 세대에게 결혼은 인생의 필수 관문이자 사회적 의무다. 하지만 자녀 세대에서는 ‘결혼 적령기’라는 개념이 흐릿해졌다. 결혼을 다양한 선택지 중 하나로 보며, 비혼주의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들에게 결혼은 행복을 위한 수단일 뿐, 목적도 의무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여러 세대가 모이는 직장에서는 조직 문화에 대한 시각 차이가 세대 갈등으로 이어진다.
MZ세대에게 이직과 퇴사는 유별난 것이 아니다. 단일 커리어만으로는 생존이 불확실한 시대에, 나와 맞지 않는 조직에 억지로 머무는 것은 오히려 손해라는 인식 때문이다. 임금 상승률은 정체되고, 직장 내 성장 가능성도 예전만 못한 상황에서 이직과 퇴사는 오히려 하나의 전략에 가깝다.
기성세대는 이를 보고 “끈기가 없다”, “조금만 힘들면 포기해 버린다”라고 평가한다. 이들은 한 직장에서 오랜 시간 묵묵히 버티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왔다. 그러니 잦은 이직과 퇴사가 무책임하고 철없는 선택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결국 조직의 단합을 중요시하는 기성세대의 충성심과 이직을 염두에 두는 신입 사원들의 마음가짐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기성세대에게 회식은 단순한 술자리가 아니라, 인간적인 신뢰를 쌓는 중요한 자리다. 업무 시간에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통해 유대감과 팀워크를 다지는 중요한 과정인 것이다. 그 때문에 과거에는 회식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것이 의리이자 예의로 간주됐다.
반면 MZ세대는 회식을 업무 외 시간에 대한 간섭으로 받아들인다. 특히 회식이 선택이 아닌 의무가 될 때 거부감은 더 커진다. 억지로 웃고 맞장구쳐야 하는 분위기도 불편하거니와, 퇴근 이후는 온전히 개인의 시간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요즘은 회식비를 모아 점심시간에 가벼운 외식을 하는 등,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회식을 피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세대 간 인식 차이는 정치에서도 나타난다. 2002년 대선 당시, 젊은 층과 장년층의 지지 후보가 극명하게 엇갈리며 ‘세대의 정치’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이후 선거철마다 세대별 투표 성향은 중요한 분석 대상이 됐고, 특정 세대를 대변하는 공약과 슬로건은 정치의 한 축이 됐다. 2012년 대선에서는 ‘2030 vs 5060’ 구도가 더욱 뚜렷해지며, 한국은 본격적인 세대 정치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특히 최근엔 중도층을 겨냥한 통합 전략보다는, 충성스러운 지지층을 동원하는 갈라치기 전략이 우선시된다. 세대 갈등을 부추기는 선거유세로 인해 상대 세력에 대한 적대와 증오가 깊어지고 있다. 정치인들의 숙제 중 하나는 세대 통합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희대의 콘텐츠 ‘MZ vs 꼰대’
‘세대’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비슷한 경험과 가치관을 공유하는 집단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런 집단화는 자칫 일반화의 오류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세대 갈등’이라는 것은,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 문제를 단순한 대립으로 뭉뚱그리는 것일지 모른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이런 인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걸까?
이러한 사회 분위기의 조성에는 미디어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미디어는 본래 문화 전달과 사회 통합의 역할을 다해야 하지만, 세대 갈등의 단편적인 이미지만 보여주고 있는 실정이다. 그 예로 ‘MZ 오피스’가 있다. 직장에서의 세대 차이를 다루며 인기를 끌었지만, MZ세대의 일방적인 문제점만을 부각하는 등 균형을 잃은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는 MZ세대 다수가 조화와 소통을 통해 함께 성장하는 조직 문화를 지향한다. 그러나 콘텐츠에서는 웃음 유발을 목적으로 극단적인 갈등 장면만이 공유됐다. 장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특정 세대를 공감하고 이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선입견을 품고 잘못된 이미지를 씌우는 건 문제”라고 지적한다.
▲ SNL <MZ 오피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상의 담론도 한몫하고 있다. 특정 세대의 불만을 자극하는 발언과, 편향된 매체 사용이 맞물리며 악순환이 반복된다. ‘요즘 애들’, ‘MZ’처럼 다소 느슨한 표현과 달리, 주 사용자가 1020 세대인 온라인 공간에서는 ‘꼰대’, ‘틀딱’, ‘연금충’처럼 매우 자극적인 멸칭이 쓰인다. ‘혐로 사회’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할 정도다. 실제로 20대가 대다수인 ‘에브리타임’에서는 기성세대를 헐뜯는 글을, 중장년층이 주 이용자인 네이버 카페에서는 MZ세대를 향한 불만 섞인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좌) 에브리타임 / (우) 네이버 카페
수용자 개인의 태도 역시 큰 영향을 미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를 무시하는 심리적 경향을 ‘요즘 애들 효과(Kids these days effect)’라고 소개했다. 이는 자신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영역일수록 본인 세대보다 젊은 세대들이 부족하다고 인식하는 심리적 오류다. 여기에 기성세대가 자신의 과거를 미화하는 ‘좋았던 옛날 편향(Good-old-days bias)’까지 더해지면, 실제로는 현재의 개선된 상황도 과거보다 악화된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 결과, 흐려진 객관성 속에서 세대 간 간극은 더욱 벌어진다.
대화가 필요해
세대 갈등은 단순한 ‘다름’ 이상의 문제로,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와 유대를 약화시킬 수 있다. 물론 갈등은 다양한 세대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현상이지만, 그것이 분열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미디어가 갈등을 극단적으로 묘사하고 정책적으로 세대를 구분 짓는 일이 반복될수록, 서로에 대한 오해는 깊어진다. 이를 통해 생긴 갈등의 골은 단절을 야기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회는 갈등을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와 공감을 유도해 세대 간 연결고리 역할을 해야 한다.
갈등이 재현되는 방식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소비하는가도 중요하다. 이해의 부족은 오해를 부르고, 깊어진 세대 갈등은 세대 혐오로까지 이어진다.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없이 색안경을 끼고 있진 않은지,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야 할 시점이다.
누구나 한때는 젊었고, 결국엔 늙어간다. MZ세대 또한 신세대에서 기성세대로 나아가는 길 위에 놓여 있을 뿐이며, 언젠가는 다음 세대에 자리를 내어줄 것이다. 세대가 다르더라도 결국 같은 시대를 살고 있기에, 우리는 모두 본질적으로 연결돼 있다. 중요한 것은 다름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으려는 자세다. 사회적 뒷받침과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더해질 때, 진정한 공존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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